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목호의 난 (문단 편집) == 창작물 == 만화가 [[정용연]]이 해당 사건을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그린 만화 <목호>가 있다. 도서출판(주)휴머니스트에서 펴낸 만화 잡지 <보고> 창간호부터 5호까지 실렸다. 도해라는 작가가 그린 '하치의 난'이라는 [[웹툰]]도 있다. KBS 사극 <[[정도전(드라마)|정도전]]> 2화에서 공민왕과 명나라 사신 사이의 대화 속에서 목호들이 반발해 명에 바칠 말을 바치지 못하고 있다는 대사를 통해 목호의 난이 암시, 언급된다. [[성균관]] 말단 관리 [[정도전(정도전)|정도전]]으로부터 그의 목숨을 건 뼈저린 간언을 듣고 난 공민왕이 제정신을 차린 것을 시작으로 이후 경복흥으로부터 제주로 간 [[최영(정도전)|최영]]의 진압군이 목호들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고 잔당들은 이제 범섬으로 도망쳐 진압은 시간 문제라는 승전보를 전해듣고 감격하지만 바로 그 뒤에 [[이인임(정도전)|이인임]]의 충동을 받은 [[홍륜]] 등의 자제위에게 시해당하고, 3화에 첫 등장한 최영은 탐라에서 [[임견미]]를 통해 이 소식을 전해듣고 대노한다. > '''"출정식에서 이 [[부월]]을 하사하신 전하께 아뢰었었소. 소장은 명나라에 말을 바치기 위해 탐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황제국 고려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남정 북벌의 첫 발을 떼는 것이라고... 이제 시작이거늘... 대체 도당의 중신이라는 작자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그리고는 공민왕에게서 받은 부월을 그대로 상 위에 찍어버리며 "'''오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전하 곁을 지켰어야 했어!'''"라며 한탄하고, 군사를 어찌 해야겠느냐는 지윤의 말에 무주공산을 틈타 간신들이 어떤 짓을 벌일지 모른다며 전군의 탐라 출군을 명한다. 그때 개경에서는 누구를 새로운 왕으로 세울 지에 대해 논의중이었는데, [[우왕|강령부원대군]]을 세워야 한다는 이인임에 맞서 왕실의 인물을 세워야 한다는 명덕태후였지만(명덕태후는 [[우왕|강령부원대군]]이 공민왕의 씨가 아닐 수도 있다며 그를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고려의 왕을 자신의 개로 만들 것이라고 왕의 시신 앞에서 단언했던 이인임이 나서서 최영이 무장도 풀지 않고 군권도 그대로 가진 채 빠른 속도로 상경 중이라는 말과 함께 "'''충신도 따를 군왕이 있을 때 이야기. 지금은 그 자에게 군권을 내놓으라 명할 임금이 아니계시지 않습니까?'''"[* 작중 경복흥의 대사에서도 언급되는 것이지만 고려 왕실은 [[정중부]], [[이의방]], [[최충헌]] 등 무신들이 국왕을 멋대로 옹립하고 폐위했던 [[무신정권]] 시절의 기억에 대해 [[히스테리]] 같은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이인임은 "지금 고려 군사의 8할이 최영의 손에 있다"며 이 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었고, 명덕태후도 경복흥도 이 점에서는 당연히 넘어갈 수밖에 없다.]라며, 최영이 군권을 가진 지금 자신이 조종하기 쉬운 군주를 옹립할지도 모른다고 하고는, 앞서 최영이 [[소금]]에 절여 보낸 탐라 적장(목호 지도자)들의 수급을 보여준다.[* 당연히 탐라 적장들의 수급을 보낸 최영의 뜻이야 자신이 승리했다는 증거이자 전리품으로써 보낸 것이지만 이인임은 이것을 최영이 그만큼 난폭하고 과격해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위험 인물임을 보여주기 위해 내놓았던 것. 다만 최영의 상경 과정에서 "지친 병사와 '''말'''은 버리면서"라는 대사는 애초에 목호를 진압하러 군사를 보낸 이유가 (명나라에 바칠) 제주의 말을 거두기 위해서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소 의아한 부분이다.][* 다만 이 말을 버렸다는 부분은 위의 공민왕이 황제국 고려의 영광을 되찾겠다, 남정 북벌의 첫 발이다. 라는 대사를 했다고 생각하면 어느정도 설명은 된다. 작중 남벌은 명에게 보낼 공마 문제도 있지만 진정한 목적은 아직 반항하는 탐라를 토벌하며, 힘을 기르고 충분해지면 명을 상대로도 저조한 자세를 보이지 않겠다는 것이었으니, 그 대의를 품은 공민왕이 죽었다고 하면 최영에게 있어서 말들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인임이 지적한 최영의 과격한 성격, 여기에 최영을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정말 역심을 품은 것은 아닌지 확인하려고 태후가 보낸 판삼사사가 "도성은 별일이 없다. 일단 군사를 쉬게 하고 태후의 명을 기다리라"라는 말에 "도성이 지척인데[* 최영은 당시 [[남경(고려)|남경]](지금의 서울)까지 와 있었다. 서울과 개성은 오늘날에도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다.] 여기서 군사를 쉬게 하라는 저의가 뭐냐?"라는 최영의 물음에 판삼사사가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바로 "이놈을 당장 포박하라!"고 하고는 그대로 진군을 강행하고, 최영의 모습에 질린 명덕태후와, "이러다 이인임의 말대로 제2의 [[무신정변]]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한 경복흥은 결국 강녕부원대군을 왕으로 옹립해야 한다는 이인임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된다. 요동 정벌을 위한 [[공요군]]을 직접 지휘하려는 최영에게 "선왕이 시해당하신 것은 경이 탐라를 정벌하느라 개경을 비워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3화에서 "왕이 되면 아버지처럼 목숨을 잃을까 무섭다"고 이인임에게 말했다. ~~이에 이인임은 "왕이 안 되시면 마마께서는 죽습니다."라고 대답한다.~~]라고 우왕이 말렸다는 고려사의 기록 또한 25화에서 그대로 묘사되었다. 요즘에 부왕의 시신을 꿈에서 자주 본다며, 심지어 자객이 난입해 자신을 죽이는 꿈을 꾸고 나서는 더욱 최영에게 요동으로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으라고 하는 등 자신의 목숨에 대한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2015년에 소설가 이성준이 목호의 난을 주제로 한 소설 <탐라, 노을 속에 지다> (전2권)를 발표하였다. [[분류:고려(말기)]][[분류:반란]][[분류:제주특별자치도의 역사]][[분류:한몽관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